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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2015.05.31 out 06.01


북유럽의 호텔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지금 나와 당신이 떠올린 그 이미지. 아마 다르지 않을 거다. 정갈한 나무 가구들과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의 자재들. 그 사이사이를 포근하게 밝혀 주는 센스 있는 조명들. 비유럽 여행자가 떠올릴 수 있는 북유럽에 대한 모든 로망을 정말 최선을 다해 집약시켜 놓은 듯한 환상적인 숙소였다. 게다가 저녁에서야 체크인을 하게 된 우리는 운이 좋아던 건지. 뷰가 정말 좋은 룸을 얻었다. 삼각 지붕의 다락방이었는데 경사진 창문 너머로 빗방울 필터를 낀 코펜하겐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북유럽의 모든 로망을 실현시켜 주기에 한치도 부족함이 없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첫날부터 기막히게 좋았던 숙소 자랑을 하는 거냐고. 그건 아니다. 이 숙소에도 복병은 있었다. 그건 바로 우리였다.


이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최악의 컨디션을 가진 여행자였다. 인천-도쿄, 도쿄-도하, 도하-스톡홀름, 스톡홀름-코펜하겐. 비행기를 4번 갈아 타고 대기시간 포함 35시간을 이동한 끝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마침 스톡홀름 날씨는 으슬으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애초에 우산 따위 챙겼을 리 없는 우리는 그저 초행길의 숙소로 최선을 다해 뛰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비를 쫄딱 맞고 거지꼴로 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숙소로 뛰어 들어왔다. 가격은 1박에 9만 원. 우리에게는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이었으나 첫 숙소인만큼 공 들여 예약했다. 네번의 비행 끝에 도착할 숙소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편하게 쉬어야 했고. 오랜만에 가는 북유럽이었고. 생수와 바게뜨 빵으로만 하루 식비 1만원으로 연명하던 예전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또 하필 우리가 묵는 이 날 하루만 앞뒷날 보다 50% 싼 파격가로 할인하고 있어서 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과연 잘한 일이었다. 비수기 여행자가 누리는 소소한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성수기엔 30만원도 넘어가는 호텔방을 단 돈 9만 원에 접수한다는 것. 


우리는 들어오자마자 북유럽의 환상을 모두 채워주는 듯한 아늑한 조명과 비 내리는 풍경 너머로 보이는 집들을 보며 비에 젖은 옷을 벗고 침대에 바로 누워 뒹굴었으면 좋았겠지만 40시간 가까이 닦지 못 한 몸을 닦아내야 했다. 샤워를 한 시간 정도 했던 것 같다.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침대에 누우니 폭풍처럼 잠이 몰아쳤다. 정신 차리고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멀리 갈 수 없었다. 비가 많이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 호텔 밖으로 50미터 이상 걸어 나갈 수 없는 상태이긴 했지만. 호텔 바로 옆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7년 전 6개월간 유럽여행에서는 주문해 보지 못 했던 가격의 햄버거를 시켰다. 어니언 링도 시켰다. 너무 맛있었다. 맥주도 시켰다. 진짜 맛있었다. 피곤이 가시는 듯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부근에서 나름 소문난 맛집이었다. 식사를 흡족하게 하고 바로 방으로 돌아가 쿨쿨 잠을 잤다. 자기 전 맞춰 놓은 알람 시각은 새벽 5시. 다음날 아침 7시 비행기를 타고 페로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10시도 되기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뻗어 버렸다. 이 환상적인 숙소에서 우리는 화장실 한 번, 침대 한 번 사용하고 그렇게 체크아웃했다. 





 


작지만 알차고 맛있었던 햄버거


내가 지금껏 살면서 먹어 본 어니언 링 중 최고였다. 이거 한 번 더 주문해서 먹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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