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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그리고 연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저게 알베르 까뮈가 했던 말인지 이방인에 등장했던 글귀인지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 언젠가 저 글귀를 본 순간부터, 저것은 내 삶의 문장이 되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독히도 관계에 대한 결벽증이 있었고 지금도 조금 그러한 편이지만

모순되게도 그만큼 관계에 대한 호기심 역시 강한 사람이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열심히 도망치며,

극히 소수의 내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해왔다고 생각했고

그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여전히 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은

나와 오래도록 깊은 관계를 가진 이들과의 소소한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나는 내 굴을 파고 들어간다는 느낌을 요 몇 년 새 지울 수 없었다.

이십대 초반까지 내게 가장 유효했던 가치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내 삶의 스승으로 삼자'에 시위하듯

나는 많은 사람들을 악인으로 몰기도 했으며,

 

정의에 불타 올라 모든 것을 싹 쓸어버리자는 과격주의자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온갖 보수와 기존의 시스템에 안티한 성향을

가장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던 것 같다.

이러한 성향은 퇴사 이후 더 강해졌다.

 

그 해 떠났던 여행 이후로 난 이십대 초중반에 맺었던 많은 관계들을 자연스레 떼어냈고

모든 인적 네트워크에서 한 발짝 물러서 관망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온라인 활동도 소셜네트워크 같은 것에 엄청난 결벽증적인 증상을 보여왔고

오로지 내가 아는 사람들과의 좁고 깊은 관계에 대한 지향만이

내 삶을 더 단단히 해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최근 몇 년 간 다시 생각은

이십대 초반의 그때로 돌아가는 듯 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이 다르긴 하다.

 

그때는 세상의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만,

그것은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생각은,

어떤 면에서 옳은 것이 어떤 면에선 그른 것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충분히 판단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둘 다 세상을 굴리는데 필연적으로 필요한 면면들 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예전엔, 누군가의 가치관이 옳고 그르다 판단할 자격이 내게는 없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누군가의 가치관은 내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글렀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그러나 그 가치관 역시 세상에 필요한 것이다. 라고 인정하게 된 것.

각자의 몫, 각자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정말 뼛속까지 깨닫게 되었다고나할까.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지독히도 예민하고,

최대한 나와 타인 사이에 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할 때

나는 많은 웹사이트 및 커뮤니티에서 자진 탈퇴했었다.

수 많은 내 데이터들을 날려버리는 것쯤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나는 많은 매체들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싫다.'

그 시절, 미니홈피를 했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음직 한 말이다.

그 만큼 사람들은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인 관계에 신물을 내지만,

또다시 그 포장지만 바뀌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것에 또 금방 열광한다.

모든 관계의 지옥이 지겨워 떠났던 사람들이 바보처럼 다시 관계의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나는 끊임없이 그런 sns 세계에 반감을 품은 채로 페이스북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체의 부정적인 면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던 내게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엄청난 반전이 최근에 일어났다.

 

지난 11, 아주 충동적인 마음으로서른즈음에 프로젝트라는 것을 기획했는데,

- 서른즈음인 친구들 서른 명과 함께 노래 서른즈음에를 불러보는 프로젝트

그것이 생각보다 큰 파장과 여운을 안겨준 거다. 바로 내 삶에. 그리고 친구들의 삶에도.

사실 그 누구보다도 큰 파장을 느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몇몇 친구들은 내가 제일 고생했다며, 혹은 사서 하는 고생이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는데

감사의 인사는 내가 전해야 할 판이다.

이 프로젝트는 애초에 sns라는 매체를 활용하지 못 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거다.

 

새벽에 생각한 아이디어를 바로 글로 옮겼고 도와주겠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였고

참여하겠다는 사람들도 며칠 동안 잘 끌어모아 어느새 서른 명이 되어 있었다.

실시간으로 기획 아이디어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받았고, 사람들을 모집했고

 

모든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결국 30개의 음원을 12월에 모두 모을 수 있었다.

모두가 부담 없이 각자가 가장 편한 기기를 통해 자신만의 서른즈음에를 불러서 녹음했고

그것을 mp3파일로 만들어 내 이메일로 전송하면 끝이었다.

후반 작업은 믹싱을 담당한 친구의 몫이었고.

그 친구와도 역시 프로젝트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했다. 이메일과 스마트폰 어플의 도움을 얻어 소통한 것이 전부였다.

뭐 얼굴을 볼래야 볼 수 없는 외국에 거주하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나는 애초에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생각보다 좋은 퀄리티를 가질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긴 했다.

 

그것은 내가 이런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바로 당장은 아니어도 곁에 있다 묵묵히 도와줄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란,

어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간에 어떤 변수나 위기(게으름, 혹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도와주겠다던 친구들이 중간에 마음을 바꾼다거나 하는 일 등등)가 생긴다면

그것을 내가 강요할 수 없기에.

내가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쭉 일을 진행시켰다.

사실 특별히 책임감을 느껴 부담 된 적도 없고, 나는 계속 내내 들떠있고 즐거웠던 것 같다.

함께 해준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아 더 고맙고 사랑스럽다.

 

결국 지난 설 연휴 내내

나는 앨범 속지를 직접 칼질하고 접으며 케이스에 넣고 씨디를 구우며

정말 오롯한 생산의 기쁨, 순수한 목적을 갖고

각자 자신의 스타일로 함께하는 결과물에 대한 엄청난 감동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실 이보다 더한 감동은 이 프로젝트를 애초에 시작했을 때

초반 내내 시큰둥했던 융이 막판엔 앨범 케이스와 속지 마무리 작업을 열렬히 도와줄 정도로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도와줬다는 거다. 이런 태도의 변화가 정말 날 뿌듯하게 만들었다.

 

모르는 사람들, 혹은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돈을 버는 일이 아니고,

그냥 장난처럼 시작한 일을 이렇게까지 함께 하고

또 내 사비를 들이는 것, 내 시간을 들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누군가는 냉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딱 그런 부류의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런 허무맹랑한 짓은 생각보다 너무 큰 기쁨을 내게 안겨주었다.

돈 주고도 돈 벌면서도 절대 얻어낼 수 없는 그런 감정과 경험의 가치다.

 

프로젝트 초반과 달리 점점 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가는 사람들의 미묘한 태도의 변화를 본다는 것. 무미건조했던 서른즈음의 삶에 다들 한 가지씩 커다란 추억이 앨범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을 나와 내 친구들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내겐 기적이고 감동이었다.

이런 기쁨을 느껴본 게 얼마만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여의 기쁨 같은 것이다.

참여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공감하거나 나눌 수 없는 그런 연대의 기쁨이다.

나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귀찮음과 어느 정도의 냉소를 극복하고

한 발자국 앞을 내딛고 나아간 느낌.

이제 또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언젠가 정말 희미한 추억으로 남겨지겠지만.

그래도 얼마 동안은,

한 동안은 떠올리면 흐뭇할 그런 앨범 한 장이 모두에게 배달 되었다는 것.

 

앨범이 다 완성되고, 친구들이 앨범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 벅찬 글을 올렸을 때

그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할 때, 나 역시 그 못지 않은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함께 참여해주지 않았다면 이것은 이렇게 멋진 앨범이 되지 못했을 거다.

늘 시큰둥하던 친구가 활짝 웃는 표정으로 앨범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을 때

평소에 아무리 길어도 문자 길이가 한 문장이 채 넘지 않는 친구가

새벽 시간에 빼곡한 글을 담은 문자를 보내오고.

몇 년 간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가

불쑥 내가 일하는 가게로 와서 커피를 주고 가는 이런 것들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서른즈음.

이십대와는 다르게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아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친구들이 돈벌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프로젝트에

서로의 재능을 조금씩 기부해서 행복한 연대를 만들었고

이것은 정말 진행 과정 내내 그리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모두 다 이상적이었다.

페이스북같은 sns를 참 싫어하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페이스북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가장 생산적이고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낸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좋은 예를 다시 만들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앨범 프로젝트를 1막으로 쳤을 때

2 3, 더 다양한 장르와 재미난 기획으로 친구들이 재미난 일들을 해갔으면 좋겠다.

정말 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 생계를 위해 각자의 밥벌이를 계속해야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만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무언가를 함께 한다면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것을 경험해봤으니까.

끊임없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을 그저 술자리 위에 안주거리로만 썩히지 말고

즐거운 놀이로 승화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생각과 긍정의 에너지가 얼마나 갈지 나도 몰라.

종종 두렵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 상관없다.

누군가는 서른즈음에 상상해보지도 못 했을 추억과 앨범을 우리는 이미 가졌으니까.

맘껏 지금을 즐기고,

그리고 많이 많이 이 긍정의 에너지를 서른즈음의 다른 친구들에게 나누고 싶을 뿐이다.

 

이 망할놈의 애매모호한 이 서른즈음을 정말 잘 살아나가보자고!

더이상 이상 만을 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현실주의자로 돌변할 수도 없는.

이 어중간한 줄다리기에서 꼭 각자 만족할만한 서른즈음의 삶을 살아보자고 말이다.

 

내가 늘 부르짖던 '고독 그리고 연대'를 현실로 이뤄봤다는 것.

그것도 한때 내가 지독히도 떠나고 싶어했던 이 서울에서

그것도 내가 한때 미치도록 증오하던 sns를 통해서 이 프로젝트를 완성했다는 거.

이것 자체가 정말 내겐 여러모로 머리를 둥둥 울리는 값진 경험이었다는 거.

 

여행 할 때도 나는 하루를 일찍 시작하고 싶어 아침잠을 포기하고 일어난 적이 전혀 없다.

그랬던 내가 지난 설 연휴에 갓 출력해온 몇 백장의 종이들을 겨우 칼질 하려고

오전 아홉시에 눈을 번쩍 뜨고 한 번에 일어났었다.

그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던 그 기분 좋은 설레임.

잊지 못할 거다. 

 

 


 

 

2011년 12월에 시작된 서른즈음에 프로젝트를 마치고

함께 참여한 친구들에게 모두 씨디를 보낸 후

2012년 1월 31일, 일기장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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